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좋은 에너지를 흐르게 하는 공간이 바로 주방이라고 생각해요. 벽에 노란색 계열의 페인트를 칠한 건 예전에 함께 살던 친구의 아이디어였는데 색감이 전달하는 밝은 에너지가 주방과 잘 어울려요.
한적하고 오래된 동네에서 살고 있네요. 당산동에는 어떤 계기로 살게 되었나요? 교통이 편리하고 주거비가 저렴한 곳을 찾고 있었어요. 이 집은 사진으로 봤을 때부터 오래되었지만 독특한 내부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는데, 저렴한 월세도 매력적이었어요. 이 동네에는 1980년대 중반에 지어진 집이 많은데 재개발을 기대하는 집주인들이 낡은 집을 수리하지 않고 저렴한 가격으로 세를 주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이 집도 그중 하나예요. 물론 낡아서 불편한 점이 많지만요. 그대신 제 마음대로 고칠 수 있고, 주거비를 아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가장 먼저 고치고 싶었던 곳이 어디였나요? 주방은 처음 봤을 때 이 집에 살기 싫을 정도로 최악이었어요(웃음). 상부장은 다 기울어져 쏟아질 것 같았고, 창문은 후드로 가려져서 공간이 너무 어두웠죠. 주방이 뭔가 묵직한 것에 눌린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상하부장이 있지만 공간 활용도 잘 안 되었고, 너무 꽉 차서 굉장히 좁아 보였거든요. 월세가 저렴하니까 주방 정도는 제 돈을 투자해서 고쳐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 주방만 대대적으로 손봤어요.
철거부터 설치까지 직접 한 건가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직접 했어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서 기존 주방 가구들은 직접 철거했고, 도배를 하고 그 위에 페인트칠도 직접 했어요. 주방 가구는 이케아에서 구입해서 설치한 거예요. 공간이 너무 답답해 보여서 일부러 상부장은 빼고 필요한 곳에만 오픈형 선반을 두었고요. 수도나 타일같이 기술이 필요한 부분은 집 근처 인테리어 업체에 부탁했어요. 이렇게 수리했는데도 생각보다 비용이 얼마 안 들었어요. 전체적으로 300만원 정도 썼는데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요?(웃음)
생각보다 저렴하네요! 어떤 공간으로 꾸미고 싶었어요? 친구들이 와서 즐겁게 먹고 마시고 떠들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미국의 집들은 주방이 큰 편이고, 가족이나 친구들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함께 만들며 왁자지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하거든요. 그리고 어디에 시선이 가더라도 답답하지 않은, 기가 잘 통하는 그런 공간도 중요했어요! 그런 공간엔 자꾸 머물고 싶어지고, 뭔가를 하고 싶게 만들어요.
식탁과 의자는 없는데, 식사는 주로 어디서 하는지 궁금해요. 제가 집에서 만드는 것들은 간단한 한그릇 음식들이어서 혼자 아일랜드 앞에 서서 먹기도 하고, 작업실이나 침실에 가져가서 먹을 때도 있어요. 저 혼자 생활하는 공간이니 꼭 한자리에서 먹기 보다는 자유롭게 먹고 싶은 곳에서 먹는 편이에요.
주방 한쪽에 전시된 오래된 청자와 족자가 눈길을 끄네요. 평소 한국 골동품에 관심이 많은 편인가요?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다 보니 가끔씩 경매 앱을 통해 어떤 물건들이 올라오는지 구경하는 게 취미예요. 조선 후기 물건들 중에 생각보다 저렴하게 파는 것들이 많아요. 디자인이 마음에 들거나 특별한 스토리가 있는 것들 중에 가격이 괜찮은 물건들은 몇 개 사두었어요. 그리고 저희 집하고도 잘 어울려서 빈 공간에 진열했는데 마음에 들어요!
채소나 과일의 씨앗을 직접 심고 키워서 먹는 즐거움이 생각보다 크더라고요. 더 맛있고 건강한 방법인 것 같아요. 그리고 수확의 결실을 한번 맛보면 요리하다가 씨앗을 버리게 되는 일은 없을걸요?
평소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최근엔 《두 번째 지구는 없다》라는 책도 냈어요. 친환경적인 살림 노하우를 전수해주신다면요? 완벽하진 않지만 최대한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고, 고기는 되도록 적게 먹으려고 해요. 불필요한 것들을 사지 않고, 산 것은 그 기능이 다할 때까지 쓰는 편이고요. 요리를 할 때도 쓰레기가 최소한으로 나오게 노력해요. 예를 들어 요거트를 먹을 때, 중형 사이즈 요거트와 우유를 함께 구입하죠. 다 먹은 요거트 통을 씻지 않고 우유를 부어서 며칠 두면 자연 발효가 돼 다시 요거트가 되니까, 요거트 한 통으로 3~4통을 만들어 먹는 효과가 있어요. 또, 고기를 잘 사진 않지만 지금 냉장고에 선물 받은 족발이 있는데 어떻게 요리하면 살코기와 뼈를 낭비 없이 잘, 맛있게 먹을지 고민 중이에요. 껍질은 기름을 내는 데 쓰고, 뼈는 우려서 육수로 활용하면 스튜 등 국물 요리를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거예요. 짜 낼 수 있는 건 모두 짜내는 게 노하우라면 노하우죠.
“단순하지만 재미있게 살림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낭비하지 않고 쓰레기 없이 요리를 하고 음식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안 그래도 접시에 모아둔 씨앗이 궁금했는데 그것도 과일을 먹은 후에 남겨둔 거라고 하셨죠? 과일이나 채소를 요리할 때 씨앗을 버리지 않고 잘 모아뒀다가 텃밭에 심어보세요! 잘 관리하면 열매를 수확할 수도 있거든요. 저희 집 텃밭에서 자라는 고추, 가지, 옥수수, 참외 같은 식물들은 모두 그런 방식으로 재배한 것들이에요.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풍년은 아니지만 씨앗을 직접 심고 키워서 먹으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대화를 나눠보니 주부 10년 차인 저보다 더 프로 살림꾼 같아요. 살림을 잘하진 않지만 제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살다 보니 나름대로의 노하우는 생겼어요. 저는 원래 정리하고 청소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수납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고 해요. 예를 들어, 싱크대 서랍은 공간마다 어떤 물건들이 들어갈지 정확하게 분리하지만, 정리를 그리 잘하지 못하니 서랍 안에서는 조금 어지럽게 놓여 있어도 크게 개의치 않아요. 그리고 하부장의 코너는 공간이 넓은데 내부 선반이 회전이 되거든요. 그곳에는 용도가 애매해서 제가 용도를 정해둔 서랍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물건,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주로 보관해요. 회전 선반 때문에 깊숙이 넣어둔 물건도 쉽게 찾을 수 있어서 편리하더라고요. 살림을 잘하지 못하더라도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으면 인생이 즐거워져요. 너무 잘하려고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는 걸 추천해요.
September 07, 2020 at 10: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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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일러 라쉬의 좋은 에너지가 흐르는 주방 - 리빙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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