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유통규제]
이는 매출로도 확인된다. 정부가 대형마트 규제를 시작한 2010년 21조4000억원이던 전통시장 매출은 2018년 23조9000억원으로 2조5000억원이 느는데 그쳤다. 그 기간 정부가 전통시장 지원에 쓴 누적예산(2조4833억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규제의 효과가 아니라 규제의 명분을 소비한다(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유통기업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을 만나 하소연을 해보면 '유통 규제 효과 없는 거 우리도 안다, 하지만 무조건 밀어붙일 수밖에 없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유통 관련 규제 법안이 계속해서 발의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통업 관련 규제는 일단 정치적으로 매력적이다.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약자’이고, 유통기업은 이들을 괴롭히는 '악당'이다. 정치인 입장에선 약자를 지켜주는 정의의 사도가 된다. 물론 규제로 인한 효과는 불분명하다. 최근 논란이 된 지역화폐 도입 효과 논쟁과도 닮아있다. 여기에는 '소상공인을 돕겠다는데, 경제적 효과 운운하지 말라'는 정서가 깔려있다. 초선·재선은 물론 다선까지 뛰어든 여당 의원 사이의 선명성 경쟁도 이를 촉발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국 소상공인 636만명…정치적 영향력 커
익명을 원한 서울시 자치구의 한 부구청장은 “한 표가 아쉬운 국회의원이나 구청장 같은 선출직 공무원으로선 시장 상인회나 상인의 영향력을 무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소상공인 관련 단체들도 유통 관련 규제에 우호적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관계자는 최근 유통업 규제 강화 움직임과 관련 "시장 상인들은 생존을 위해 이제서야 장사에 온라인을 접목하는 걸 배우고 있다"며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상인들은 보호받아야 하는 약자"라고 말했다.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도 유통업 관련 규제 법안은 본회의 통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한다. 한 마디로 '타율이 높은' 이슈다. ‘강자 대 약자’ 구도가 뚜렷하니 야당 등도 이를 강하게 반대하기 어렵다. 익명을 원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김종인 대표부터 경제 민주화를 강조하는 판이니, 소상공인을 보호하자는 '좋은 취지'에 대놓고 반대하기 힘든 형편"이라고 전했다.
과잉 규제, 형평성 논란은 부담
이와 관련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의 대결'을 전제로 한 유통업 규제는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며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하는 '제로섬(zero sum)' 관계로만 볼 게 아니라,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같은 오프라인 업체들이 온라인 업체와의 경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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