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기업인⋅청년 교육기지 만들라"
중국 곳곳에 장젠 정신 배우기 열풍
장젠, 20여개 기업⋅370여개 학교 설립
사업구국… 서방 경제침략 대응 애국자
중국에 때 아닌 장젠(1853~1926)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 마오쩌둥(毛澤東)도 민족공업이 잊어서는 안될 인물로 그를 내세울만큼 장젠 배우기가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엔 정도가 다르다. 청나라말 장원급제로 한림원 관리를 지낸 장젠은 면방직 철강 주류 등 20여개 기업과 370여개 학교를 세워 근대 민족공업을 일으키고, 교육사업 발전에 공헌한 인물로 알려져있다.
이번 장젠 배우기 열풍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단초를 제공했다. 중국에서는 지도자가 새로운 메시지를 던지면 이를 학습하는 열풍으로 이어지는 게 관례다.
시 주석은 지난 7월 기업인 좌담회 때 장젠을 애국기업인의 모범이라고 추켜세운데 이어 11월 12일 난퉁시를 시찰하면서 "사업 교육 의료 사회공익사업으로 군중을 돕고 고향을 부유하게 한 중국 민족기업가의 본보기"라고 찬양하고 나섰다. 이어 "난퉁박물관과 장젠의 옛집을 애국주의 교육기지로 만들어 민영기업인과 청소년이 교육 받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영국의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는 시점에 주목했다. 중국 지도부는 개방을 외치면서 내부에는 외국 의존도를 줄이라는 혼선된 메시지를 날리고 있다. 세계 증시 사상 최대 기업공개(IPO)가 예정됐던 앤트파이낸셜의 상장을 이틀 앞두고 전격 중단시킨 것도 이같은 혼선을 부추긴다. 이런 때 비밀스러운 정권이 무엇을 중시하는지를 드러내는 행보에 주목해야한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시진핑이 청나라 기업인을 다시 소환한 이유는 뭘까. 중국 사업환경 변화의 방향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 기업은 물론 현지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도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다.
장젠은 청나라말 민국 초기 서방의 경제침략에 맞선 인물로 평가 받는다. 미중 무역전쟁과 기술패권 전쟁을 통해 화웨이 등 중국 간판 기업을 견제하는 상황을 과거 서방 제국주의의 경제침략으로 비유하는 현 지도부의 속내가 담겨있다.
장젠은 중국에서 가장 먼저 민간자본으로 방직공장을 세우고, 민자 철도를 깔고, 민자 사범학교를 세우는 등 중국에서 1호로 한 게 20여개에 이른다. 외국 해운사들의 독점을 깨기 위해 증기선을 수입하는 등 서방기술을 모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코노미스트는 장젠이 네덜란드 관개 시설과 일본 소금 생산 기술도 들여왔다고 전했다.
장젠은 1915년 위안스카이(袁世凯)가 일본의 21조 요구를 수용하자 이를 항의하면서 겸직하던 관직을 내려놓는 등 애국과 구국에 앞장섰고 사업의 목적도 구국이었다.
♢완전한 자본주의도. 완전한 국유도 아니다.
장젠의 첫 사업은 1895년 면방직 공장 설립이다. 국가가 감독하고 민간이 자본을 대는 형태였다. 이코노미스트는 이같은 모델이 상인들에게 독점을 주는 댓가로 세금을 내고, 황제에게 기부하도록 하는 청나라말의 시스템에 따른 것이었다며 1904년 회사법이 생기면서 장젠의 다성(大生)그룹이 주식회사가 됐다고 전했다.
"완전한 자본주의도 아니고 완전한 국유도 아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장젠의 기업이 주주의 자본으로 운영됐지만 나라를 위해 존재했다고 평했다. 바로 이 점이 중국 지도자들에게 호소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시 주석은 장젠을 찬양하면서 민영기업인이 사회책임감을 키우고 4개 자신감을 지켜야한다고 강조했다. 4개 자신감은 중국 특색자본주의의 길, 이론, 제도, 문화에 대한 자신감을 말한다. 서방과 다른 중국의 길을 외치는 중국 지도부가 기업에게도 장젠 같은 애국 기업인이 되라고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기업의 성공 보다 사회환원 중시
장젠은 사업가로서는 실패한 기업인이다. 대외부채가 불어난 가운데 1922년 면방직 산업이 위기를 맞이하면서 장젠의 사업도 벼랑 끝에 몰린다. 특히 일본이 자국기업에 대대적인 자금지원을 한 탓에 장젠은 힘겨운 경쟁을 벌여야했다. 해외자금 조달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2년 뒤인 1924년 다성그룹에 자금을 댄 은행채권단에 의해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고, 2년 뒤 세상을 떠났다.
장젠은 교육으로 대표되는 사회공익사업을 개인의 자선사업이 아닌 회사의 사업으로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학교 짓는데 왜 회삿돈을 쓰냐는 소액주주들의 항의를 무시한 일화를 전했다. 기업의 성공 자체 보다 사회환원을 중시한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시진핑이 시찰한 난징박물관과 장젠 옛집을 취재하면서 만난 현지인이 시 주석의 장젠 찬양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묻는 질문에 "많은 기업인들이 돈만 생각하는데, 이제는 사회에 돌려줘야할 때"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다성그룹은 신중국이 설립된 후 1966년 국유기업이 됐고, 지금도 면방직과 의류 및 문화 사업을 하는 직원 5000여명, 자산 28억위안(약 4600억원)의 그룹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https://ift.tt/2JIiYvQ
비즈니스
No comments:
Post a Comment